[기억의터-기억3기] 활동 리뷰 #2 나눔의 집 답사를 다녀와서

[기억의터-기억3기] 활동 리뷰 #2 나눔의 집 답사를 다녀와서


아래 글은 기억하는 사람들 3기 김관희 님의 활동보고서를 토대로 작성 되었습니다.


10월 3일, 식민지역사박물관과 나눔의 집 답사를 다녀왔다.

먼저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집결을 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일본제국주의 침탈의 역사와 함께,

항일투쟁의 역사를 기록하는 박물관으로서, 많은 시민들의 성금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크지 않은 작은 공간이지만 굉장히 알차게 전시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설명을 들으면서 박물관을 둘러보는데, 일본이 얼마나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우리 나라를 갖고 놀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사진은 ‘일출신문조선쌍육’이라는 일명 조선을 두고 하는 땅따먹기 놀이판이다. 일명 신라가 조선에게 공물을 바쳤다는 그림이나, 귀무덤인 이총, 게으르고 야만적으로 표현한 조선인의 모습 등 식민사관을 주입시킨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게임의 끝은 초대 조선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병합조칙을 읽는 모습이다. 이 놀이판 하나만 봐도 얼마나 본인들의 침략을 정당화시켰는지 알 수 있다.

위 사진의 부채는 부채의 용도가 아니라, 우리 나라에 있는 나무들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약탈하기 위해 엮어놓은 것이었다. 통치비용의 대부분을 다 우리 땅에서 앗아가고, 농촌의 자원까지 수탈해서 한국땅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일본의 잔인함이 저 부채 하나만으로도 보여진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친일파의 후손과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양 옆으로 비교해서 볼 수 있게 해놓은 곳이었다. 두 가문을 이렇게 비교해서 보니 극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친일파의 후손은 서울대 총장, 농림부 장관에 결국 대통령까지 배출해내면서 계속 권력과 부를 이어갔지만, 독립운동가 자손들은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보여 안타까웠다.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나와 밥을 먹고,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으로 갔다.

나눔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날씨가 굉장히 맑고 좋았다.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나뉘어져 있어서 이동하면서 듣는데,

처음에 ‘위안부’제도의 성립과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위안부, 종군위안부, 정신대, 성폭력피해자 용어의 차이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나도 항상 단어의 사용에 있어서 헷갈리고 망설이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단어 구분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아랫층으로 내려가 일본군 위안소 지도를 보는데 지도의 점 하나가 하나의 위안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오키나와에서만 최소 150개 정도 있었다라고 생각을 하면 좋겠다고 설명해주셨는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위안소를 만들어서 운영한건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특히 전쟁때문에 언제 죽을지 몰라서 일명 사쿠, 즉 콘돔을 사용하지 않으려 한 일본 군인들의 행태는 단순히 일제의 만행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전쟁 자체에 대한 회의감과 분노가 일었다.

실제 위안소의 형태를 재현해놓은 공간도 있었는데, 그 곳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내려올 때의 지하 계단소리는 계단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일부러 군인들이 올 때의 삐꺽거리는 소리가 공포스러웠다는 증언에 맞게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안은 굉장히 어둡고 비인간적인 곳이었고, 들어가는 순간 숨이 턱 막히었다.

딱딱한 누울 곳만 존재하는 그 곳은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었다.

심지어 거기에 있던 공간이 오히려 실제보다 더 넓은 공간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들어가보다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공포와 고통에 눈물이 절로 나왔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물건 등을 볼 수 있었는데, 어떠한 피해자가 아닌 그냥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의 그들을 알 수 있게 되어서 너무 따뜻하고 좋았다.

또한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은 인터넷으로도 많이 봤었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마음을 울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괴로운 심정을 표현한 그림, 그들의 꽃다운 청춘이 어떻게 망쳐졌는지 고스란히 전해지는 그림들이었다.

게다가 그림도 너무 잘 그리셔서 실제로 동생과 같이 어떻게 이렇게 그리고 표현하실 수 있나 감탄하기도 했다.

이 공간의 가장 맨 윗 층은 한옥처럼 되어있었는데 볕이 잘 드는 곳에 나무로 새긴 얼굴과 이름들이 있는 공간의 형태가 좋았다.

가슴 아픈 역사이기도 하면서 용기를 내어준 분들을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눔의 집이 서울에 있거나, 좀 더 교통접근성이 편리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오히려 이렇게 나무도 많고 평안한 따뜻함이 있는 곳에 나눔의 집이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더 좋은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들릴 기회가 없을 곳이었는데, 이번 기회로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하고 온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다.

휴일에 늦잠을 자지 않고 가는 것에 당일 아침에 갈등을 느꼈었는데, 잠깐이라도 갈등을 느낀 나 자신에 대해 많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느낀 감정을 잊지 않고 잘 간직해서, 더 성숙한 시민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단 다짐을 했다.


by. 기억하는 사람들 3기  김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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